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과달카날 전역 (문단 편집) == 기울어진 전세 - [[과달카날 해전]][* 일본 측에서는 '제3차 솔로몬 해전'이라 부른다] == 10월 27일 2사단의 패배소식을 접한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이대로 전선을 유지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 하에 대본영에 과달카날을 포기할 것을 건의했지만 대본영은 ~~언제나 그랬듯이~~ 육군 38사단을 추가배치하여 다시 공격한다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시를 내렸다. 이 지시에 따라 대규모 수송부대와 전함이 중심이 된 핸더슨 비행장 포격부대를 출격시킨다. 이 무렵 과달카날의 미군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전폭적인 지원하에 전력증강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이미 주둔하는 지상군만 2만 5천 명에 캑터스 항공부대는 [[P-38 라이트닝]]을 비롯한 188기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11월 12일 일본의 상륙을 대비하여 아베 히로아키 소장이 지휘하는 제11전대가 헨더슨 비행장 포격을 위해 출항하는데, 당시 과달카날 근해에는 미군의 증원부대를 수송하기 위한 선단과 이들을 호위하기 위한 함대가 있었다. 일본군이 비행장 포격을 기도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이 함대가 출동하여 11월 13일 새벽 첫번째 야간 해전(1차 과달카날 해전)이 벌어졌다. 일본의 11전대가 전함 기리시마와 히에이를 보유했던 반면 미 해군 호위함대는 중순양함 위주로 비교적 약체였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약체인 미 해군이 도망갔을 것으로 생각한 아베 제독은 그만 허를 찔렸다. 미군 역시 전투에서 경험부족을 드러내면서 큰 손해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서로가 뒤섞인 가운데 혼전 양상으로 전개되어 캘러헌 제독과 스코트 제독이 전사하는 등 미 함대가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꼬리를 말고 물러난 건 일본 함대였다. 일본 함대 지휘관이었던 아베 제독은 자신이 승좌한 히에이가 전투 시작과 동시에 난타전의 한복판에 휘말려버리자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전의를 잃고[* 게다가 벤슨급 구축함인 USS래피가 난전과 야음을 틈타 히에이에서 10m거리까지 접근하여 대공기관포로 함교를 긁어버렸다. 어두운밤에 난전이 벌어지고 함교가 쑥대밭이되자 일순간 쇼크를 먹은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기록을 보면 장교들이 대공포에 벌집이 되어서 함교가 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 휘하 함대를 철수 시켜버렸다. 결국 11전대는 전함 히에이와 구축함 2척을 잃은 채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물러났다. 홀시 제독은 순양함 전대가 타격을 입어 해역이 텅 비게 되자, 전함 전대를 이끌고 있던 윌리스 A 리 소장에게 엔터프라이즈를 호위 중이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2번함 워싱턴과 미국의 최신예 전함인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네임쉽 사우스다코타를 이끌고서 연료를 가장 넉넉하게 실은 4척의 구축함들과 함께 제64임무부대로 재편성하여 출동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미 해군 함대는 북상하면서도 항공 작전을 위해 동남쪽으로 반복적으로 기동한 탓에 생각보다 과달카날에서 멀어져있었고 그래서 수상함 함대는 14일에 도착할 수 없었다. 반면 일본 함대는 비행장 공격부대의 작전 실패로 상륙부대는 작전을 일단 취소했지만, 11월 14일 새벽 상륙부대를 호위하던 미카와 중장의 함대가 비행장에 공격을 가했다. 하지만 중순양함의 8인치 함포로는 위력이 부족해서 약간의 피해를 입힐 뿐, 미군이 우려했던 결정적인 타격은 입히지 못했다. 되려, 날이 밝자 미 항모 엔터프라이즈와 핸더슨 비행장에서 출격한 미군 항공기들에게 반격을 받아, 중순양함 [[키누가사(중순양함)|키누가사]]와 6척의 수송함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곤도 제독이 지휘하는 2함대가 1차전에서 살아남은 11전대의 잔존 세력 및 미군의 폭격에서 살아남은 수송함 4척과 구축함 5척과 함께 헨더슨 비행장 포격을 위해 접근하고 있었다. 그날 밤 리 제독이 이끄는 제64임무부대가 곤도 제독의 함대와 조우했는데, 일본 해군 정찰기가 미국의 전함을 못보던 함종의 중순양함으로 '''착각'''하는 바람에 곤도 제독이 미 해군의 전력을 얕보게 만들었다.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미군 구축함들은 거의 전멸당했지만 그 대신 위협적인 [[93식 어뢰]]를 거의 다 소모시킨 덕분에 전함들은 안심하고 전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사우스타코타는 전력계통에 문제가 생겨서 키리시마한테 두들겨맞게 됐지만 버티고 있었고, 거꾸로 워싱턴 쪽에서 반격하여 사우스다코다에 정신팔렸던 키리시마를 격침시킨다.[* 이건 [[과달카날 해전]]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키리시마의 자충수였다. 그리고 일본군 해군의 야간전 전술에 큰 허점이 있다는 걸 보여준 것이기도 하다.] 남은 일본 중순양함들과 구축함들이 워싱턴에게 반격을 가했지만 제64임무부대는 결국 일본 함대를 따돌렸고, 결국 곤도 함대는 핸더슨 비행장을 포격하지 못했지만, 수송 선단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만한 미 해군 세력이 없다는 판단하에 철수하게 된다.(2차 과달카날 해전) 하지만 아침이 밝자 캑터스 항공부대와 미해병대의 포병들이 합작으로 일본군 수송선단을 전멸시켰고 결국 일본군은 6천 명의 전사자와 함께 화포와 식량, 탄약 등을 포함한 보급품 1만톤 중에서 단 5톤만을 건지게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일본 해군은 제해권과 제공권을 완전히 상실하였으며, 일본 육군 역시 더 이상의 공세를 취하지 못하고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는 지경이 되어버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